척 핀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http://www.mainlineautographs.com/images/product_pics/FinleyChuck2_20090612452.gif
오오 나름대로 훈남 오오[1]
파일:external/4.bp.blogspot.com/IMG_5949.jpg
이제 2012년이면 50줄이 되는 된 핀리 옹. (2012년 한 팬이 올린 블로그) [2]
파일:external/static5.businessinsider.com/chuck-finley-and-tawney-kitaen-1997-2002.jpg
착시현상 관련 고전 짤방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위의 여성이 바로 전 부인 타이니 키튼.
오오 나름대로 훈남 오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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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2년이면 50줄이 되는 된 핀리 옹. (2012년 한 팬이 올린 블로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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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현상 관련 고전 짤방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위의 여성이 바로 전 부인 타이니 키튼.
메이저리그의 전직 투수로, "척" (Chuck)은 애칭이다. 등번호 31번을 사용했다. 전성기에는 90마일 중반대의 속구를 뿌리던 전형적인 좌완 강속구 투수로 제구는 평균 이하였지만 스플리터의 위력이 워낙에 절륜했기 때문에 80마일 후반대로 속구 구위가 떨어진 커리어 후반기에도 많은 탈삼진을 적립할 수 있었다.
1. 현역 시절 [편집]
1.1. 에인절스의 에이스 [편집]
루이지애나 대학 출신의 에이스로, 1985년 드래프트에서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아 에인절스로 입단.[4]
일단 핀리는 대학에서 투수로 활약한 경험을 인정받아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1986년 불펜 요원으로 빅리그 생활을 시작한다.그렇게 급했나..? 첫 해에 3.3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핀리는 이듬해부터 선발로 전향하게 된다. 1988년 처음으로 붙박이 선발로 뛰기 시작한 핀리는 당시 천사네의 선발 마운드를 책임지던 마이크 위트, 호세 켄달라리아,돈 서튼이 나이가 들거나 부진하거나 해서 물러나자 점점 입지를 넓혀가게 된다.
그렇게 노장들이 하나둘 물러났고, 핀리도 붙박이 선발로 나온 첫해인 1988년에는 9승 15패로 그저 그런 성적만을 내지만, 1989년 버트 블라일레븐이 팀에 합류하고, 또 다른 에이스 커크 매카스킬이 핀리와 원투펀치로 활약하면서캐쩌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신인 짐 애보트가 포텐을 터뜨리면서 91승을 합작하지만, 같은 시대의 태평양 돌핀스를 방불케하는 물타선[5] 때문에 3위를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은 실패하게 된다.
어쨌든 1989년의 활약에 힘입어 핀리의 연봉은 18만 달러에서 70만 달러로 포풍 상승. 1990년에도 236이닝이나 공을 던지며 18승과 2.4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더욱 힘세고 강했던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에이스 밥 웰치 (27승)가 사이 영 상을 가져갔고 핀리는 투표에서도 7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연봉은 250만 달러로 또 상승. (2년만에 연봉이 10배 이상 올랐다) 1991년에는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부쩍 올라가긴 했지만 다시 한번 18승을 거두며 척 핀리 - 커크 매카스킬 - 마크 랭스턴 - 짐 애보트로 이어지는 에인절스의 막강한 선발진의 한축을 이룬다.하지만 현실은 물타선
연봉이야 쭉쭉 올라갔겠지만 핀리는 점수 하나 제대로 못 내는 물타선 때문에 고생했다. 1992년에는 답답한 타선이 승수를 챙겨주질 못해서 7승에 그쳤고, 1993년에도 16승 14패의 성적을 거둔다. 그 후로도 핀리는 1999년까지, 80년대에 비해서는 임팩트가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으로 열심히 팀에 봉사하며 에인절스에서만 통산 165승을 기록한다.
일단 핀리는 대학에서 투수로 활약한 경험을 인정받아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1986년 불펜 요원으로 빅리그 생활을 시작한다.
그렇게 노장들이 하나둘 물러났고, 핀리도 붙박이 선발로 나온 첫해인 1988년에는 9승 15패로 그저 그런 성적만을 내지만, 1989년 버트 블라일레븐이 팀에 합류하고, 또 다른 에이스 커크 매카스킬이 핀리와 원투펀치로 활약하면서
어쨌든 1989년의 활약에 힘입어 핀리의 연봉은 18만 달러에서 70만 달러로 포풍 상승. 1990년에도 236이닝이나 공을 던지며 18승과 2.4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더욱 힘세고 강했던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에이스 밥 웰치 (27승)가 사이 영 상을 가져갔고 핀리는 투표에서도 7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연봉은 250만 달러로 또 상승. (2년만에 연봉이 10배 이상 올랐다) 1991년에는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부쩍 올라가긴 했지만 다시 한번 18승을 거두며 척 핀리 - 커크 매카스킬 - 마크 랭스턴 - 짐 애보트로 이어지는 에인절스의 막강한 선발진의 한축을 이룬다.
연봉이야 쭉쭉 올라갔겠지만 핀리는 점수 하나 제대로 못 내는 물타선 때문에 고생했다. 1992년에는 답답한 타선이 승수를 챙겨주질 못해서 7승에 그쳤고, 1993년에도 16승 14패의 성적을 거둔다. 그 후로도 핀리는 1999년까지, 80년대에 비해서는 임팩트가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으로 열심히 팀에 봉사하며 에인절스에서만 통산 165승을 기록한다.
1.2. 에인절스를 떠난 뒤 [편집]
2000년 FA 자격을 얻은 핀리는 3년 간 2,700만 달러의 연봉을 주는 조건을 제시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하는데, 당시 클리블랜드는 1990년대 이후 케니 로프턴, 알로마 형제, 매니빙매니 매니 라미레즈, 짐 토미, 데이비드 저스티스 등등등이 합세하여 롸끈한 화끈한 타선을 자랑한 전성기의 끝물을 달리고 있었다. 이 해에 핀리는 16승을 거두며 바톨로 콜론과 함께 인디언스의 마운드를 이끌지만, 2001년 부상으로 무너진데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등판한 두 경기 모두 불을 질러 역적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2002년 시즌 도중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고 만다.[6] 어쨌든 핀리는 2002년 한 해 동안 11승을 추가하며 200승 고지에 도달했고 그 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2. 은퇴 이후 [편집]
2008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얻었는데 통산 성적이 200승 거둔 거 빼면 영 좋질 않아서[7] 0.2%의 득표율과 함께 조용히 광탈당한다. 대신 2009년 4월 핀리는 에인절스 명예의 전당에 브라이언 다우닝과 함께 헌액되었다.
3. 이야깃거리 [편집]
- 1980년대 미국의 톱스타 타이니 키튼[8]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2002년 이혼했다.
- 여담으로 한 이닝 4삼진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세 번이나 기록한 바 있다. 1999년 애너하임 에인절스 시절 두 번 기록했고, 2000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에 한 번 기록했다. 이 얘기는 뭔고 하니, 기록으로는 삼진으로 처리하는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타자 한 명 진루를 허용시켰지만 나머지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 한 이닝을 마무리지었다는 얘기다.[9] 한 이닝 4삼진은 메이저리그 한 시즌에 한두 번 나올까말까 하는 진귀한 기록인데, 개인이 3번 이상 해낸 건 메이저리그에서도 척 핀리가 유일무이하다.
[1] 90년대 MLB를 찾던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앤디 페티트와 쌍벽을 이루는 좌완 미남 투수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뭐 랜디 존슨도 얼굴로 인기를 끌었지만 페팃과 핀리에 비해서는 조금...[2] 핀리를 좋아하는 한 천사네 팬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이다.[3] 사실 1984년 드래프트 15순위로 에인절스에서 데려가려고 했는데 후발 지명을 받아 자존심이 상했는지 핀리가 사인을 안 했다.[4] 루이지애나 대학 출신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다른 투수로는 밀워키 브루어스의 벤 시츠가 있다. 같은 해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 중엔 존 웨틀랜드도 있었다.[5] 1989년 에인절스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빠따질 타격을 선보인 타자 (아니, 타율만 좋았던 선수들은 뺀다 치면 그렇다. 그래봤자 3할은 한명도 없었지만)는 외야의 쌕쌕이 데본 화이트 (44도루) 뿐이었다. 그나마 화이트도 2할 4푼의 타율에 2할 8푼의 출루율을 기록했으니 다른 타자들이야 뭐...[6] 트레이드 상대는 코코 크리스프. 한편 클리블랜드의 좌완 에이스 자리는 어떤 뚱보가 잇는다.[7] 적어도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임팩트나, 마이크 무시나의 꾸준함, 커트 실링급의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이 있어야 200승 투수가 명전에 갈 수 있다고들 하는데, 핀리는 셋 다 잘 안 맞은 투수였다.[8] Julie 'Tawny' Kitaen. 별명은 Sex kitten. 80년대부터 TV드라마나 영화로 활동하던 섹시컨셉 여배우로 한때 록밴드 화이트스네이크의 보컬 데이빗 커버데일과 결혼하기도 했다. 핀리와는 97년에 결혼해 5년간 부부관계였고 자녀가 둘 있다.[9] 이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한 이닝에 거둘 수 있는 기록상 삼진 수는 무한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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